2021-06-27
내일 보낼까 했는데 네가 우리 집으로 오려고 짐을 싸둘까봐 오늘 보내.
말보다 글이 익숙해서 글로 풀어내는 걸 이해해줘. 네가 원한다면 얼굴보고 다시 얘기해도 좋아. 나는 이만 우리 관계를 마치고 싶어. 네 사랑이 내게는 만족스럽지가 않다는 걸 오랫동안 느껴왔거든.
그리고 이건 너의 잘못이 아냐. 사랑엔 다양한 양상이 있고 네가 주는 사랑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내가 원하는 사랑과 다르기 때문일지도, 혹은 정말로 그 사랑이 내겐 충분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라. 무엇이 맞건 간에 내게는 꽤 고질적인 문제였어. 관계에 불만족이 생기니까 말이야.
어쩌면 이전의 몇 개의 네 대답, 네 질문들이 달랐더라면 이렇게 끝내기로 결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야. 그러나 그것들이 일관되게 쌓여서 오늘이 되었으니 내 잠시의 기분이나 착각으로 이러는 건 아닐 거야. 여러 번, 몇 달에 걸쳐 생각했던 문제이고 오늘을 잘 넘긴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문제에 부딪힐 거란 예감이 들어. 여태 내 안에서 그랬듯이 말이야.
너를 바꿔보려 하기도 했어. 다만 내가 원하는 사랑을 느끼게 해달라고 네게 직접 말하면 사랑을 노력한다는 인위적인 모습에 이질감을 느낄 것 같아서, 무언갈 원한다, 너를 이런 식으로 좋아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려고 했어.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자연스레 네가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, 너는 알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되진 않았어.
그건 나름의 네 방식이 있기 때문이겠지.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자신에게 맞아 편안하기 때문일 거야.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더욱 나에게 맞춰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. 그건 널 힘들게 할 거야.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사랑이 막연히 좋지만도 않을 거야. 난 계속 그 사랑의 진위를 의심하겠지. 결론은 났어. 난 이제 네가 바뀌는 걸 원하지 않고, 나도 바뀔 수 없어. 그래서 우리가 어긋나게 되었네. 하지만 이건 결코 네 탓이 아냐. 내 마음의 문제야.
이런 이유로 헤어지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계속 되물었어. 네가 없는 삶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, 그래서 네 곁에 남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. 나는 네 옆에서 충분히 공허하니까. 물론 계속 그랬던 건 아니야. 너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해서 만난 사람이었고, 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어. 그렇지만 함께 있기 위해 나를 속이면서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진 않았어.
아직 널 사랑해. 그렇지만 생각이 정리되었으니 마음도 차차 정리될 거라고 믿어. 슬프게도 정말로 끝났네. 내 글 좋아하지 않는 거 알면서 길게 써서 미안해. 읽어줘서 고마워. 잘 자.
너는 나와 무거운 대화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. 그리고 그 이유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. 내가 만족할 만큼의 대답을 못해줄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. 나는 네게 바라지 않았고 너도 내게 원하는 것은 없었다. 그래서 우리는 싸울 일이 없었다. 반대로 깊어질 일도 없었다. 우리는 연인인 척했지만 사실은 그저 역할 놀이에 불과했다는 걸 서로 깨달아 갈 때쯤 어렵지 않게 헤어졌다.